‘미국교과서’ 공부 붐 학습효과 잘 따져야
학원에 따라 '또다른 주입식' 될수도, 영어 늘어도 다른 지식은 공백 우려
주부 변소영(35·서울 명륜동)씨는 요즘 7살 난 딸의 영어학원 문제로 고민 중이다. ‘미국교과서로 가르친다’는 학원 광고 전단지가 연일 쏟아지는데다 동네에서도 이같은 학원에 다니는 유치원·초등학생을 더러 보았기 때문이다. 변씨는 “책 값도 한권에 2~8만원이나 한다”며 “과연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 급증하는 미국 교과서= 미국교과서를 교재로 활용하는 어린이 영어학원이 동네 곳곳에 파고들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스콜라스틱.맥그로힐.휴톤미플린사(社) 등 5~6개 출판사의 미국교과서가 들어와있다. 과목도 영어뿐 아니라 수학.과학.사회 등 다양하다.
2000년부터 스콜라스틱 출판사의 영어 교과서 'Literacy Place'를 수입 판매하고 있는 언어세상 관계자는 "미국교과서 시장이 해마다 30~50%씩 커지고 있다"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부분의 영어학원에서 특별반.영재반 형태로 미국교과서반(班)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맥그로힐 출판사의 교과서를 수입하는 사회평론 정병채 기획실장은 "최소 1백곳이 넘는 학원에서 맥그로힐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 "영어 초보자엔 무용지물"= 학원 관계자가 꼽는 미국교과서의 장점은 "영어를 수단으로 사회.과학 등을 설명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영어공부로 이끌어 준다"는 것. 영어를 가르치는 데 목적을 둔 교재가 상황 설정이 작위적이거나 내용이 지루한 데 비해 미국 교과서로 공부하면 내용에 흥미를 갖게 돼 영어공부의 동기가 유발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외대 영어교육과 차경애 교수는 "아이가 영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최소한 3년 이상 영어공부를 해 외국인을 위한 영어 교육(ESL) 과정의 중급이상 수준은 돼야만 한다는 것. 차교수는 또 "초등학교 1학년 교과 과정까지는 글씨가 거의 없고 그림만 많기 때문에 이를 교재로 영어공부를 한다는 것은 극성부모의 '모양내기'에 그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에서 주로 판매되는 책들은 유치원 과정과 초등학교 1학년 과정에 머무르고 있다. 그 이상 단계에서는 수요가 크게 줄어 사회평론에서 펴내는 한글지침서도 초등학교 1학년 과정까지만 나와 있다.
● "강사 자질이 효과 좌우"= 같은 교재라도 교사와 수업방법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법. 전문가들은 "미국 교실에서처럼 공동 프로젝트와 토론 수업 등을 해야 미국교과서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한 원어민이나 동포의 지도를 받는 것이 필수요건. 국내의 주입식 교육과는 다른 토론식 탐구 학습 방식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 국내학원에서는 미국교육을 받아보지 않은 강사들이 교사지침서를 활용하거나 미국교과서 수입회사 등에서 진행하는 2~10시간짜리 단기강좌를 듣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지침서에 제시된 획일적인 질문과 그림그리기.인형만들기 등의 활동을 진행하는 또 다른 주입식 교육이 이뤄질 공산이 큰 것. 또 우리나라 국어에 해당하는 'Reading''Language Art'등도 절반 정도가 작문과 관련된 내용이지만, 이를 적절히 지도해줄 만한 강사가 없어 대부분의 학원에서 해석과 문법으로 수업을 채우고 있다.
● "한글책 읽을 시간을 주세요"="영어에는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지식을 쌓는데는 도리어 방해가 된 것 같아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주부 김미연(41.서울 서초구 잠원동)씨의 고백이다.
미국 방송을 무리 없이 이해할 정도의 영어실력이던 김씨의 아들은 지난해부터 미국교과서로 공부를 해 왔다. 하지만 1년여 동안 한글책을 보지 않아 어휘나 지식에 공백이 생겼고 다른 과목에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김씨는 "한글책 서너권을 볼 수 있는 시간에 고작 영어책 한권을 보니 영어 외의 학습능력이 떨어진 것 같다"며 "영어책의 다채로운 그림과 구성 등에 익숙해져 따분한 한글책은 아예 읽으려 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고 귀띔했다.
미국교과서는 미국의 시각에서 역사.문화를 가르치고 미국인의 전래동화와 동요.놀이 등을 활용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편향된 세계관을 심어줄 수도 있다.
서울대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는 "미국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교육과정을 우리 아이들이 따라하는 것은 교육문화적인 관점에서 재고해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학원에 따라 '또다른 주입식' 될수도, 영어 늘어도 다른 지식은 공백 우려
주부 변소영(35·서울 명륜동)씨는 요즘 7살 난 딸의 영어학원 문제로 고민 중이다. ‘미국교과서로 가르친다’는 학원 광고 전단지가 연일 쏟아지는데다 동네에서도 이같은 학원에 다니는 유치원·초등학생을 더러 보았기 때문이다. 변씨는 “책 값도 한권에 2~8만원이나 한다”며 “과연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 급증하는 미국 교과서= 미국교과서를 교재로 활용하는 어린이 영어학원이 동네 곳곳에 파고들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스콜라스틱.맥그로힐.휴톤미플린사(社) 등 5~6개 출판사의 미국교과서가 들어와있다. 과목도 영어뿐 아니라 수학.과학.사회 등 다양하다.
2000년부터 스콜라스틱 출판사의 영어 교과서 'Literacy Place'를 수입 판매하고 있는 언어세상 관계자는 "미국교과서 시장이 해마다 30~50%씩 커지고 있다"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부분의 영어학원에서 특별반.영재반 형태로 미국교과서반(班)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맥그로힐 출판사의 교과서를 수입하는 사회평론 정병채 기획실장은 "최소 1백곳이 넘는 학원에서 맥그로힐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 "영어 초보자엔 무용지물"= 학원 관계자가 꼽는 미국교과서의 장점은 "영어를 수단으로 사회.과학 등을 설명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영어공부로 이끌어 준다"는 것. 영어를 가르치는 데 목적을 둔 교재가 상황 설정이 작위적이거나 내용이 지루한 데 비해 미국 교과서로 공부하면 내용에 흥미를 갖게 돼 영어공부의 동기가 유발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외대 영어교육과 차경애 교수는 "아이가 영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최소한 3년 이상 영어공부를 해 외국인을 위한 영어 교육(ESL) 과정의 중급이상 수준은 돼야만 한다는 것. 차교수는 또 "초등학교 1학년 교과 과정까지는 글씨가 거의 없고 그림만 많기 때문에 이를 교재로 영어공부를 한다는 것은 극성부모의 '모양내기'에 그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에서 주로 판매되는 책들은 유치원 과정과 초등학교 1학년 과정에 머무르고 있다. 그 이상 단계에서는 수요가 크게 줄어 사회평론에서 펴내는 한글지침서도 초등학교 1학년 과정까지만 나와 있다.
● "강사 자질이 효과 좌우"= 같은 교재라도 교사와 수업방법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법. 전문가들은 "미국 교실에서처럼 공동 프로젝트와 토론 수업 등을 해야 미국교과서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한 원어민이나 동포의 지도를 받는 것이 필수요건. 국내의 주입식 교육과는 다른 토론식 탐구 학습 방식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 국내학원에서는 미국교육을 받아보지 않은 강사들이 교사지침서를 활용하거나 미국교과서 수입회사 등에서 진행하는 2~10시간짜리 단기강좌를 듣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지침서에 제시된 획일적인 질문과 그림그리기.인형만들기 등의 활동을 진행하는 또 다른 주입식 교육이 이뤄질 공산이 큰 것. 또 우리나라 국어에 해당하는 'Reading''Language Art'등도 절반 정도가 작문과 관련된 내용이지만, 이를 적절히 지도해줄 만한 강사가 없어 대부분의 학원에서 해석과 문법으로 수업을 채우고 있다.
● "한글책 읽을 시간을 주세요"="영어에는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지식을 쌓는데는 도리어 방해가 된 것 같아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주부 김미연(41.서울 서초구 잠원동)씨의 고백이다.
미국 방송을 무리 없이 이해할 정도의 영어실력이던 김씨의 아들은 지난해부터 미국교과서로 공부를 해 왔다. 하지만 1년여 동안 한글책을 보지 않아 어휘나 지식에 공백이 생겼고 다른 과목에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김씨는 "한글책 서너권을 볼 수 있는 시간에 고작 영어책 한권을 보니 영어 외의 학습능력이 떨어진 것 같다"며 "영어책의 다채로운 그림과 구성 등에 익숙해져 따분한 한글책은 아예 읽으려 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고 귀띔했다.
미국교과서는 미국의 시각에서 역사.문화를 가르치고 미국인의 전래동화와 동요.놀이 등을 활용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편향된 세계관을 심어줄 수도 있다.
서울대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는 "미국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교육과정을 우리 아이들이 따라하는 것은 교육문화적인 관점에서 재고해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